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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꼬꼬무2) 1987, 종철이와 비둘기들편

by 신입블로그 낌미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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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2. 3. 24.(목)에 방영했던

1987년도 박종철군의 이야기입니다.

 

박종철 군이 고문치사로 죽게되었을 때 이걸 은폐하려고 했지만

박종철 군이 고문치사로 죽게 됨을 신문에 알리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인간 비둘기가 되신 분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에 신성호기자님이 고문으로 한 학생이 죽게 되자 이것을 신문에 실었고

윤상삼기자라는 분이 목격자가 있다는 첩보를 듣게 되고 그 사람이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병원을 가서 의사를 설득하다가 결국 듣게 됩니다.

 

세번째 오연상의사, 경찰들에 의해서 불려진 의사였습니다

그 의사가 보기엔 이미 사망징후가 뚜렷했지만 경찰들은 어떻게든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원으로 가서 심세동기라도 하자고 하면서 죽은 박종철군을 옮기려고 하자

의사는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환자가 병원으로 가면 사망장소가 응급실이 되는 것이고,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수 없어지므로 이것을 막아야겠다"라고

그래서 묘책으로 전화를 해서 병원에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그 병원 응급실장님께 

지금 사망환자가 병원으로 갈 예정이니, 병원에 절대 들여서는 안된다고, 막아야한다고 말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박종철군이 병원에 도착해서 의료진들이 완강히 막아서 응급실이 아니라 영안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검안서를 작성하는데 다 "미상"으로 적으면서 이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했습니다.

경찰들이 박종철아버지와 형을 불려서 강제 지장을 찍게 한 후 시신을 보여주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각서 같은 서류에 지장을 찍게 했습니다.

 

그러나 묻힐 줄 알았던 이 사실은 담당 검사가 검안서를 의심하면서 부검하라고 하자,

국과수 부검의 황적준이 사실대로 부검의를 적자, 경찰은 2명을 범인으로 잡아서 교도소에 넣었습니다.

하지만 새벽마다 교도소에서 한명은 울고, 찬송가를 매일 부르는 것을 보고 재야운동가인 이부영 기자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친했던 교도관에게 사실을 알아오도록 부탁했습니다.

 

실제로 박종철 이야기를 알게 되자 한재동 교도관을 통해 이 사실을 재야운동가 우촌 김정남에게 전하기 위해

쪽지를 써서 옮기기로 했습니다.

한재동 교도관이 인간비둘기로 우촌과 진짜 연락을 할 수 있는 전직 교도관 출신 전병용에게 쪽지를 전하고

겨우 우촌과 연락이 닿아 쪽지를 전하게 됩니다.

 

우촌 김정남은 이것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명동성당 신부님이 생각났습니다. 독재정권이지만

종교시설은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도망오면 보호해주던 성직자들입니다. 

박종철 추도 미사까지 강행 했던 명동성당 성직자였습니다. 

198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 추도 미사가 열릴때, 단상에 선 김승훈 신부님께서 우촌 김정남이 주신

쪽지를 읽으면서 박종철군의 사건을 알립니다.

 

그러다가 이한열군의 최루탄 사건까지 같이 일어나면서 전두환 다음 정권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선택했습니다.

전두환은 결국 직선제를 안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것과 박종철사건, 이한열사건이 일어나면서 결국 대통령 직선제가

선택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이 꼬꼬무에 나왔을 때 아 민주화는 진짜 피의 결과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박종철 아버지, 그리고 형도 지금 민주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형님은 여전히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번 꼬꼬무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내용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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