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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테크

‘가습기살균제’ 애경·SK 제재 11년 만에, 과징금은 고작 1억원

by 신입블로그 낌미 202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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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솜방망이’ 제재 비판 피하기 어려울 듯

법인·전직 대표, 표시광고법 위반 검찰 고발

“검찰도 공소시효 판단 달리해 기소해야”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향균제를 사용해 인체에 무해하다.” “아로마테라피 효과와 비슷한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

폐손상 환자를 발생시켜 판매 중단에 이른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 출시 보도자료에는 이런 문장들이 담겼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피해 인정자만 4350명에 이르는 사회적 대참사였다. 이들 가운데 22%는 애경 제품 이용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거짓·과장된 광고성 인터넷 기사를 낸 혐의로 애경산업과 옛 에스케이(SK)케미칼(2017년 12월 에스케이디스커버리와 에스케이케미칼로 분할)에 과징금을 각 7500만원, 35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2002년과 2005년에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MIT) 성분이 함유된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솔잎향과 라벤더향을 각각 출시하면서 인체 무해성을 입증할 자료도 없이 거짓·과장 광고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그대로 기사화됐으며 아직까지 온라인 상에 노출되어 있다. 공정위는 각 법인과 안용찬 전 애경 대표이사와 김창근·홍지호 전 에스케이케미칼 대표이사를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표시광고법 5조는 광고에서 주장하는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기업에 두고 있다.

출시 당시 제품이 안전하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었고 오히려 인체 위해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였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가습기메이트 출시 당시 진행된 서울대 실험보고서에서도 유해 가능성이 확인됐다. 심지어 가습기메이트는 영국의 흡입 독성시험 전문기관인 ‘헌팅턴 라이프 사이언스’에서 원료물질의 저독성을 인정 받았다고 홍보했으나 관련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 두 회사에 내려진 과징금은 총 1억1천만원이다. 피해자 등 피해 규모에 견줘 ‘솜방망이’ 제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공정위는 이번 과징금은 전체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 중 일부(인터넷 기사)에 대한 부분이고 법적으로 정해진 최대치(매출액 2%)를 부과했다는 입장이지만, 앞서 2018년에 나온 1차 과징금까지 다 합해도 두 회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3억원이 안 된다. 심지어 두 회사는 1차 과징금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과징금이 취소됐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제재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조·판매업체를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신고한지 11년 만에 이뤄졌다. 그 사이 공정위는 두 회사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네차례 조사를 거쳤다. 공정위는 2012년 1차 조사와 2016년 2차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제품의 주성분과 독성 여부를 표시하지 않은 점만으로 위법행위로 판단하기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2018년 3차 조사에서는 인터넷 기사를 광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채 제품 라벨, 누리집 설명 등에 대해서만 두 회사에 과징금 1억34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4차 조사’에 나선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단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에서 공정위가 인터넷 기사를 심사 대상으로 삼지 않은 데 대해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인터넷 기사에 대한 심의절차까지 나아갔다면 공정위의 고발 및 이에 따른 형사처벌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었다”며 공정위의 부실 대응을 지적다.

애경 쪽은 “20년 전 집행광고”라며 처분시효(5년) 만료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4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애경 쪽은 2011년 12월 이미 가습기 살균제가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소매점 판매가 금지된 점과 자발적 리콜 등을 통해 2012년에 제품 대부분을 회수한 점을 들어 아무리 늦어도 2012년에 위법 상태가 종료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2017년 10월까지도 해당 제품이 판매된 정황이 확보됐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스케이케미칼은 “광고 주체는 애경이고, 우리는 지휘·감독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며 표시광고법상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제재와 고발은 처분·공소 시효를 닷새 남기고 촉박하게 이루어졌다. 이미 두 회사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공정위의 부실대응이 뒤늦은 제재를 낳은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공정위 결정에 대한 헌법재판의 피해자 쪽 소송대리인 송기호 변호사는 “만일 공정위가 부당광고건을 일찍 제대로 처리해 검찰 고발로 이어져 기소까지 됐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 건도 대응이 더 수월해졌을 것”이라며 “헌재가 이 사건 공소 시효가 남아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검찰도 이번에는 공소 시효 판단을 달리해 기소를 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한편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과거 로펌에 법률 자문한 이력을 고려해 지난 24일 열린 가습기 살균제 부당광고 사건 심의에 대해 ‘사적 이해관계자 신고 및 회피 신청’을 했다. 한 위원장은 피심인 측 법률대리인이 속한 로펌에 보험계약 해석과 관련해 법리적 의견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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